━━━━⊱ 지난 줄거리 ⊰━━━━
잉여로운 용사의 하루
【유우샤】 으음……
【메이드】 벌써 해가 중천에 떴습니다만, 아직도 주무시나요?
【유우샤】 응?
【유우샤】 ……헉!
【유우샤】 (늦잠 잤다!)
【유우샤】 미, 미안!! 들어와도 돼!
【메이드】 실례합니다.
【유우샤】 미안해! 늦잠 자 버려서……!
【메이드】 역시, 주무시고 계셨군요.
【메이드】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주무시는 중이라면 되도록 삼가려고 했습니다만,
유우샤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유우샤】 아냐아냐, 깨워 줘서 고마워!
【유우샤】 오늘 가는 거지? 마왕을 쓰러뜨리러!
【메이드】 그 얘기 말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폭우가 내려 내일로 연기한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유우샤】 어?
【유우샤】 아, 그렇구나.
【메이드】 네, 다시 주무실 건가요?
【유우샤】 아냐. 모처럼 깨워 줬으니까, 일어나야지.
【메이드】 그럼 몸단장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기쁜 듯이 그렇게 말한 메이드는 나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는 힘 조절은 절묘해서, 자칫하면 곯아떨어질 것 같다.
【메이드】 아프지는 않으신가요?
【유우샤】 전혀! 능숙하네.
【메이드】 감사합니다. 저, 유우샤 님.
【유우샤】 음─……?
【메이드】 그 밖에, 달리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유우샤】 지금 하고 있는데, 뭘. 기분 좋다~
【메이드】 그런가요?
【메이드】 그래도 필요하신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유우샤】 왜 그래?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은데?
【메이드】 ……아뇨.
【메이드】 그, 다만 유우샤 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유우샤】 이미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는걸.
【유우샤】 아, 정 그렇다면 뭣 좀 물어도 괜찮을까?
【메이드】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유우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거든. 으음…
누구에 대해 물어볼지 생각한다.
✦ 레그에 대해 묻는다
✦ 토아에 대해 묻는다
✦ 크로우에 대해 묻는다
【유우샤】 레그에 대해 알고 싶은데, 메이드가 보기엔 어때?
【메이드】 레그 님 말인가요?
【메이드】 그렇네요. 늘 멍하니 계십니다.
【유우샤】 아하하. 알지, 알아.
【메이드】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여성에게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유우샤】 어, 그래?!
【메이드】 네, 그러나 레그 님은 여성에게 흥미가 없어 보이셨습니다.
【메이드】 레그 님은 우수한 혈통을 이어받으신 분으로, 자손을 남기셔야만 합니다.
【메이드】 그 때문에 일찍이 약혼자분도 계셨습니다만,
레그 님께서 못마땅해하신 나머지 부득이하게 파담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유우샤】 우, 우와.
【메이드】 제가 아는 한, 레그 님이 자진해서 움직이는 것은
유우샤 님과 관련된 일에 한해서만.
【메이드】 분명 유우샤 님을 무척 좋아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은 저도 잘 압니다.
【유우샤】 그,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유우샤】 (명문가의 도련님인 걸까? 약혼자…라.)
【메이드】 유우샤 님, 머리카락 정돈이 끝났습니다.
【유우샤】 고마워! 비 오는 날은 습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붕 떠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정리해 준 덕분에 살았어.
【메이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유우샤】 늘 신세만 져서 어째. 나도 뭔가 답례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마왕도 쓰러뜨리지 못했고.
【메이드】 답례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기쁜걸요.
【유우샤】 음~ 그래도 난 신세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유우샤】 그래 봤자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쇼핑백 안에 있는 게 다지만.
별다른 기대는 할 수 없었으나, 뭔가 줄 수 있는 게 없을지 침실의 구석에 놓인 봉투를 뒤적인다.
가져온 쇼핑백은 물건을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바닥이 깊게 파여 있다.
안쪽에 담긴 것을 꺼내기 위해서, 윗쪽에 쌓여 있는 물건을 차례차례 바닥으로 내던진다.
【메이드】 어라, 이건?
【유우샤】 응─? 아, 벚꽃 새우 건어물이네.
【메이드】 색깔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유우샤】 그러게. 이름처럼 벚꽃색이라 귀엽지?
【메이드】 어디에 쓰는 건가요?
【유우샤】 음식이야. 한번 맛을 볼래?
【메이드】 네.
【유우샤】 특별히 이상한 건 안 들어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자.
【메이드】 ……
【유우샤】 마, 맛없어? 하긴 먹는 게 다르다고 했으니까, 역시 뱉어내는 게─
【메이드】 맛있습니다!
【유우샤】 오오~
【메이드】 좀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유우샤】 응, 물론이지. 근데 먹어도 아무렇지 않아?
【메이드】 네!
【유우샤】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
【메이드】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유우샤】 괜찮아, 메이드한테 주려고 꺼낸 거니까.
【메이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께 드려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우샤】 아, 그런가?
【메이드】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하니, 아마 아무도 외출하지 않으실 겁니다.
【메이드】 유우샤 님께서 얼굴을 비추시면 다른 분들도 기뻐하실 테죠.
【유우샤】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따분하니 잠깐 갔다 올게.
【메이드】 네, 다녀오세요.
【유우샤】 아,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좋은 아침.
【레그】 좋은 아침.
【크로우】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니까요. 좋은 아침입니다.
【토아】 안녕하세요, 유우샤 씨. 메이드에게 이야기는 들으신 것 같네요.
【토아】 보시다시피 비가 와서, 마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실망을 안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유우샤】 아니, 그건 괜찮지만. 비 때문에 연기한다는 건, 마왕은 실외에 있는 거야?
【토아】 아뇨. 악마들이 비를 싫어하는지라, 마왕의 성에 총집합해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유우샤】 아, 그렇구나. 나도 비 오는 날에는 집에 눌러앉기 십상이니까.
【토아】 가급적 위험은 무릅쓰고 싶지 않으니. 이날 이때까지 주도면밀히
계획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만, 이왕이면 쓸데없는 걱정거리는 적은 게 좋겠죠.
【유우샤】 응, 그렇네.
【크로우】 호오, 그것은 이 세계에 왔을 때 가지고 있던 식재료입니까.
【유우샤】 아, 그래그래. 난 이곳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지만 너희는 어때?
【크로우】 음식에 따라 다르죠. 인간의 손을 거친 게 아니라면 대부분 문제 없습니다.
【크로우】 어디 보자. 흐음, 과일류는 먹을 수 있겠네요. 먹어도 될지?
【유우샤】 물론 되고말고. 때늦은 점심 식사가 되겠네.
【토아】 크로우, 그녀의 몫까지 빼앗지 말아 주세요. 가까운 시일 내로
담판을 지을 거라고는 해도, 머무는 동안 식량이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크로우】 확실히 그렇군요.
【토아】 그렇죠.
【크로우】 그럼 유감입니다만 토아의 몫은 없는 걸로. 기특하네요.
【토아】 ……네.
【유우샤】 아─ 괜찮아, 괜찮아. 생과일은 못 먹으니까, 오히려 먹어 주면 나야 땡큐지.
【레그】 맛있어.
【유우샤】 정말? 잘됐다. 자, 토아도.
【토아】 여신님!
【유우샤】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부르네.
【레그】 잘 먹었어.
【토아】 잘 먹었습니다. 이야, 맛있었다.
【유우샤】 껍질까지 다 먹었구나. 깜짝 놀랐어.
【크로우】 워낙 훌륭한 맛이라.
【유우샤】 기뻐해 주니 다행이다. 다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레그】 유우샤.
【유우샤】 응?
【레그】 같이 있자.
【유우샤】 나도 그러려던 참이었어.
【레그】 그래.
【크로우】 이런, 새치기입니까.
【토아】 오오, 아주 보란 듯이 자랑하는데요.
【토아】 레그는 지금까지 이성에게 무관심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행동력, 언제 실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
【레그】 ……
【토아】 죄송합니다. 부추기는 언동은 삼가하겠습니다.
【레그】 실수, 할 거라고 생각해.
【레그】 그러니까 미리 사과할게. 미안.
【크로우】 이거야 원.
【토아】 이, 이것이 승자의 여유인가……!
【레그】 가자.
【유우샤】 으, 응.
야유 소리를 뒤로 하고, 둘이서 침실로 향한다.
어째서 침실이 되었는가 하면, 행동반경이 한정되어 있는 가운데
그 밖에 편히 쉴 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유우샤】 레그는 웃고 있을 때가 많네.
【레그】 그래?
【유우샤】 응. 봐 봐, 지금도.
【레그】 아아.
【레그】 지금까지 웃는다는 걸 의식한 적은 없었는데. 유우샤는 어떨 때 웃는 거야?
【유우샤】 그렇네. 역시 기쁠 때라든지, 즐거울 때라든지.
【유우샤】 웃는 얼굴은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에도 긍정적인 감정이 전해지니까 좋지.
【레그】 내 웃는 얼굴도 전해져?
【유우샤】 전해지고 말고. 함께 있으면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드는걸.
【레그】 다행이다.
【레그】 유우샤, 널 좋아해.
【유우샤】 ……!
✦ 레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레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유우샤】 나, 나도.
【레그】 응.
【유우샤】 그, 그. 좋아. 만난지 얼마 안 됐지만, 함께 있고 싶어.
【레그】 고마워.
원래대로라면 존재조차 몰랐을 상대와 나는 사랑에 빠졌다.
여긴 내가 사는 곳이 아니다. 멀리 떨어진 이방의 땅.
나에게는 마왕을 쓰러뜨린다는 역할이. 레그에게도 아마 혈통을 잇는다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맺어지는 게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는 세계도, 언어도, 수명도 다른 상대.
그런데도.
전연령 연재를 위해 뒷부분을 잘랐습니다
아니 근데 제작자 님아 이거 전연령이라면서요
평온한 잠 속에서,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에 의식이 깨어난다.
그러나 밀려오는 졸음에 누가 꿰매 놓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떠지지 않는다.
【유우샤】 (누구……?)
다정한 손놀림. 이 손을 나는 알고 있다.
이윽고 손이 멀어져 간다. 사라진 온기가 서운하다.
무심코 매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졸음에 이길 수 없는 나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무의식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갔다.
【유우샤】 ──엣취!
방금 전까지 들리던 빗소리가 어느새 그쳤다.
침실의 침대 위에서 나 홀로 눈을 떴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공기가 차갑다.
【유우샤】 얼마나 잔 거지……
밖은 아직 환하다. 그렇다는 건 시간은 그다지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우샤】 아침이라면 메이드가 깨우러 왔을 텐데. 일단 다른 방에 가 보자.
【유우샤】 아, 다들 여기 있었구나.
【레그】 좋은 아침.
【크로우】 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유우샤】 응?
【토아】 안녕하세요, 유우샤 씨. 비도 그쳤으니 오늘은 마왕의 본거지로 갈 겁니다.
【토아】 채비를 부탁드립니다.
【유우샤】 아, 안녕…… 혹시, 벌써 하루가 지난 거야?
【레그】 응, 비가 온 지 하루가 지났어.
【크로우】 푹 주무신 것 같군요.
【유우샤】 그런가 봐. 메이드가 오지 않았으니까, 아직 저녁이겠거니 했어.
【크로우】 아아.
【크로우】 그녀라면 잡아먹혔습니다.
【레그】 크로우.
【유우샤】 응?
【크로우】 왜 화를 내시는지? 저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유우샤】 무슨 말이야, 도대체?
【토아】 ……
【토아】 악마들은 저희에게 일정한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이번 제물은, 그녀였습니다.
【유우샤】 뭐? 하지만… 어떻게 그런.
【토아】 진정하세요, 유우샤 씨.
【유우샤】 그럴 수가.
참으세요 미노타 군
✦ 경악한다
✦ 화를 낸다
【유우샤】 아.
【레그】 유우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유우샤】 레그, 나.
【레그】 응.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은 내 곁에 레그가 무릎을 꿇고 다가왔다.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메이드와는 함께 살고 있었다. 이야기를 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없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슬퍼하는 건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닌가.
이제 와서 울어 봤자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내 안의 이성은 냉정히 사고를 돌리고 있었지만, 그저 슬퍼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레그】 울지 마.
【유우샤】 ……
걱정하듯 레그가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레그】 유우샤.
이름을 불려 고개를 든다.
【레그】 내가 죽어도, 울어 줄래?
【유우샤】 어?
【레그】 ……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레그
【레그】 미안, 못 들은 걸로 해 줘.
【유우샤】 레그.
【토아】 그녀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토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은 마왕을 시중드는 악마의 수도 적어서,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합시다.
【토아】 가실 거죠?
【유우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면서 침실로 돌아가 출발할 채비를 한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침대 옆에 놓인 검을 잡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메이드는 확실히 이 방에 있었다.
떠나간 소녀에게 잠시 묵념하고, 방을 나온다.
【레그】 가자.
【유우샤】 응.
【크로우】 저는 이곳에 남아 악마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죠.
【토아】 부탁합니다.
【크로우】 그럼 무운을.
이동 마법으로 도착한 곳은 어둡고 습한 지하 수로였다.
토아의 말에 따르면, 이 방치된 수로가 마왕에게 들키지 않는 아슬아슬한 범위인 것 같다.
필연적으로 여기서부터의 길은 도보가 된다.
피부에 착 달라붙는 냉기와 습기, 독특한 악취가 불쾌감을 자아낸다.
그다지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레그】 발밑을 조심해.
【유우샤】 알았어.
벽을 의지하면서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신중히 나아간다.
얼마쯤 가자 지하철의 통로 같은 장소가 나왔다.
다만 도폭이 좁아, 한 사람씩밖에 통과할 수 없다.
【토아】 여긴 샛길이라 적과 마주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토아】 그래도 소리는 가능한 한 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곳을 나가면 마왕이 있는 장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수긍한다. 소리를 내지 않게 살그머니 검을 고쳐 잡았다.
토아가 선두, 그 다음이 나. 맨 뒤에 레그가 서서 대열을 이룬다.
조용한 행군이 계속된다.
주위는 어둠에 싸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안 되는 소리와 기척을 의지해
한 걸음씩 나아가지만, 점차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어둠 속에서 언제 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토아】 괜찮습니까?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고, 그와 동시에 토아의 속삭임이 귀에 들린다.
【유우샤】 응.
【레그】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유우샤】 고마워.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안도하면서,
작게 숨을 내쉬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몇 개의 갈림길에서 토아는 망설임 없이 나아갔고, 나와 레그도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탁 트인 장소가 나왔다.
감도는 공기가 한층 차가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쓰러뜨려야 할 상대, 마왕이 있다.
눈앞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토아】 중앙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토아】 유우샤 씨, 제가 해제 마법을 외울 테니 중앙문의 우측에 있는 핸들을 밑으로 내려주시겠어요?
【유우샤】 응, 알았어.
토아가 영창한 후, 시키는 대로 핸들을 조작한다. 그러자 단번에 문이 열렸다.
【토아】 이 앞에 마왕이 있습니다.
【레그】 유우샤.
【유우샤】 알아,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할게.
【토아】 역시 원앙새 부부.
【유우샤】 하지만 원앙새는 쭉 사이가 좋은 게 아냐.
함께 있는 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이고, 매년 상대가 다르다나 봐.
【레그】 그렇다면, 나는 괜찮아.
【유우샤】 그래?
【레그】 내 상대는 너뿐이니까.
【유우샤】 !
【토아】 ……가족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차마 듣기 힘드네요.
【유우샤】 못 들은 걸로 해.
【토아】 네.
열린 문 너머로 또 다른 문이 보인다. 우리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문에 다가갔다.
재차 토아가 작은 소리로 주문을 중얼거린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을 향해 천천히 열렸다.
검붉은 어둠이 자욱한 가운데, 그것은 있었다.
뾰족한 뿔에 피가 응축된 듯한 붉은 눈동자. 등에는 박쥐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날개가 있다.
누구냐고 묻지 않아도, 그 모습이 정체를 말해주고 있다.
【유우샤】 마왕……!
가장 먼저 레그가 움직였다.
단검을 손에 들고 날렵하게 마왕한테 다가가, 그 진홍빛 눈동자를 베어 버린다.
【마왕】 크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선제 공격이 빛을 발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마왕이 비틀거렸다.
기회다.
검을 꽉 쥐고, 나는 마왕을 향해 돌진한다.
【유우샤】 ?!
그러나 검으로 찌르려는 순간, 마왕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갑자기 굉장한 죄악감에 짓눌려 잠시 호흡이 멈춘다.
심장이 경종을 울리고, 검을 쥔 팔이 떨린다. 검으로 찔러야 하는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레그】 유우샤!
레그가 부르고 있다.
빨리, 빨리 해야 해. 레그가 어떻게 만들어 준 기회인데.
필사적으로 자신을 질책하지만 몸은 완강히 말을 듣지 않는다.
마치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아니, 다르다. 오히려 이건──
【유우샤】 아.
떨고 있는 나의 눈앞에서 또다시 피가 튀었다.
레그가 나를 감싸고 서 있다.
그의 가슴에는, 금속으로 된 막대가 꽂혀 있었다.
【레그】 윽.
【유우샤】 레, 레그!!
【레그】 난 괜찮아…… 토아!
【토아】 큭!
토아가 주문을 외운다. 불의의 마법에 당황한 마왕은 몸을 돌려 이 자리를 떠났다.
그것을 지켜보던 레그는 쓰러지듯 무릎을 꿇는다. 나는 황급히 그의 몸을 부축했다.
【유우샤】 레그, 미안…… 미안!! 내가……!
【레그】 아냐, 이렇게 될 거라는 예감은 있었어.
【레그】 너는, 다정하니까.
【유우샤】 레그……
【레그】 울지 마.
【레그】 내가 죽을 때 울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역시, 웃었으면 해.
【레그】 미소는 전해지니까─ 나도, 행복해져.
【유우샤】 ……
【레그】 웃어 줘, 유우샤. 널 사랑해.
【유우샤】 레그?
【레그】 ……
【유우샤】 거짓말이지?
【유우샤】 저기, 일어나. 제발.
【유우샤】 ……내, 내 탓…이야?
【토아】 유우샤 씨.
【유우샤】 토아, 나도 레그가 있는 곳으로 갈게.
【토아】 ……
【유우샤】 레그를 좋아해. 함께 있고 싶어. 그러니, 날─
【토아】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유우샤】 ……정말로?
【토아】 네, 동생의 마지막 소원이니까요.
【토아】 당신에게 미소를.
그로부터 1년.
그들과 보낸 꿈만 같은 나날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서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세계── 엔리치에는 더 이상 갈 수 없지만,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마왕 토벌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레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해 지금은 내가 사는 세계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서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쓸쓸하지만, 그건 감내해야겠지.
다 나은 뒤에 싫증이 날 정도로 함께 있으면 된다.
이따금 토아나 크로우도 만나러 와 준다.
그러니 웃으며 살아가려고 한다. 레그에게 나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나의 행복이 전해지도록──
왠지 배드 엔딩 같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자! 이것으로 기념할 만한 1회차 연재가 끝났다.
그런데 토아는 왜 굳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 걸까?
생각 없이 말했다가 평생 이불킥 거리를 만들어 버린 걸까?
다음 화에 그 충격적인 진상을 파헤칠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오역/오타는 댓글로 남겨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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