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줄거리 ⊰━━━━
(대충 행복 회로 돌리는 중)
【유우샤】 아,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좋은 아침.
【레그】 좋은 아침.
【크로우】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니까요. 좋은 아침입니다.
【토아】 안녕하세요, 유우샤 씨. 메이드에게 이야기는 들으신 것 같네요.
【토아】 보시다시피 비가 와서, 마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실망을 안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유우샤】 아니, 그건 괜찮지만. 비 때문에 연기한다는 건, 마왕은 실외에 있는 거야?
【토아】 아뇨. 악마들이 비를 싫어하는지라, 마왕의 성에 총집합해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유우샤】 아, 그렇구나. 나도 비 오는 날에는 집에 눌러앉기 십상이니까.
【토아】 가급적 위험은 무릅쓰고 싶지 않으니. 이날 이때까지 주도면밀히
계획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만, 이왕이면 쓸데없는 걱정거리는 적은 게 좋겠죠.
【유우샤】 응, 그렇네.
【크로우】 호오, 그것은 이 세계에 왔을 때 가지고 있던 식재료입니까.
【유우샤】 아, 그래그래. 난 이곳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지만 너희는 어때?
【크로우】 음식에 따라 다르죠. 인간의 손을 거친 게 아니라면 대부분 문제 없습니다.
【크로우】 어디 보자. 흐음, 과일류는 먹을 수 있겠네요. 먹어도 될지?
【유우샤】 물론 되고말고. 때늦은 점심 식사가 되겠네.
【토아】 크로우, 그녀의 몫까지 빼앗지 말아 주세요. 가까운 시일 내로
담판을 지을 거라고는 해도, 머무는 동안 식량이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크로우】 확실히 그렇군요.
【토아】 그렇죠.
【크로우】 그럼 유감입니다만 토아의 몫은 없는 걸로. 기특하네요.
【토아】 ……네.
【유우샤】 아─ 괜찮아, 괜찮아. 생과일은 못 먹으니까, 오히려 먹어 주면 나야 땡큐지.
【레그】 맛있어.
【유우샤】 정말? 잘됐다. 자, 토아도.
【토아】 여신님!
【유우샤】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부르네.
【레그】 잘 먹었어.
【토아】 잘 먹었습니다. 이야, 맛있었다.
【유우샤】 껍질까지 다 먹었구나. 깜짝 놀랐어.
【크로우】 워낙 훌륭한 맛이라.
【유우샤】 기뻐해 주니 다행이다. 다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크로우】 유우샤 씨, 이 뒤에 다른 예정이 없다면 저랑 놀아 주시겠습니까?
【유우샤】 크로우가 나한테 먼저 권유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지, 뭐.
【토아】 엥?
【레그】 ……
【크로우】 하하, 새치기라면 자신 있답니다.
【유우샤】 그것 참 지독한 특기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크로우】 우선 자리부터 옮기죠. 사내놈들의 질투는 무서우니까요.
【레그】 ……
【토아】 유우샤 씨한테 버림받았다─!
【유우샤】 자, 잠깐! 크로우, 어디 가?
【크로우】 샛길입니다. 아무래도 그냥 나갔다간 노여움을 살 것 같은지라.
【유우샤】 아니, 밖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비가…
【크로우】 아침보다는 많이 갰으니까 괜찮아요.
【유우샤】 어쩔 수 없지.
【유우샤】 우와, 아주 세차게 내리는데.
【크로우】 만약 감기에 걸리시면 제가 책임지고 간병해 드리겠습니다.
【유우샤】 크로우가 간병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한걸.
【크로우】 잘 아시는군요. 약해진 사냥감만큼 사냥하기 쉬운 것도 없지요.
【유우샤】 귀축이구나.
【크로우】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유우샤】 으으, 다 젖었어~
【크로우】 매력적이시네요. 이런 걸 보고 물 찬 제비라고 하던가요?
어떻습니까, 키스라도?
【유우샤】 거절하겠습니다.
【크로우】 매정도 하시지.
【유우샤】 난 크로우의 사고를 못 따라가겠어. 토아도 마이페이스라면 마이페이스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크로우는 너무 고압적인 것 같아.
【크로우】 다른 남자와 비교하지 말아 주시죠.
그런 한심한 겁쟁이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잖습니까?
【유우샤】 그렇지 않아. 토아는 저래 봬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안다고.
【크로우】 흐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뜻밖인데요. 시시하긴.
【크로우】 ─아아, 이것이 질투라고 하는 겁니까.
【유우샤】 그래? 내 눈에는 그저 자기한테 관심 가져 달라고 칭얼대는 어린애처럼 보이는데.
【크로우】 하하. 그럼 유우샤 씨, 부디 이쪽으로. 거의 다 온 것 같군요.
【유우샤】 여기에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거야?
【크로우】 글쎄요.
【유우샤】 글쎄라니. 그럼 돌아가자.
【크로우】 잠깐. 이 장소, 당신 눈에는 어떻게 보입니까?
【유우샤】 응? 어떻냐니. 좌우로 문이 빼곡히 늘어선, 리조트풍 건물 아냐?
【크로우】 ……생각보다 강력하군.
【유우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나도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봐.
【크로우】 당신이 말했다시피, 토아는 의외로 방심할 수 없는 남자란 소립니다.
지금으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요.
【유우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걸로 만족했다면 그렇게 할까. 옷이 젖은 이유, 뭐라고 하지……
【유우샤】 쇼핑백에 목욕 수건이 있어서 다행이야~ 마침 바꿔야겠다 해서 새 걸 샀거든.
【크로우】 유우샤 씨.
【유우샤】 응? 왜 불러?
【크로우】 자, 흠뻑 젖게 해 버린 사죄의 의미로.
【유우샤】 앗, 비파다~ 웬 비파?
【크로우】 신선하니까 드셔도 괜찮아요. 드리겠습니다.
【유우샤】 이거 기쁜걸, 고마워.
【크로우】 ……
【크로우】 유우샤 씨, 당신은 메이드와 사이가 꽤 좋은 것 같네요.
【유우샤】 응, 난 메이드가 좋아.
오늘 아침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좀 더 친해지고 싶어.
【크로우】 호오.
【크로우】 실은 그녀, 오늘밤에 죽습니다.
【유우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크로우.
【크로우】 토아의 일족은 악마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오늘 바쳐질 제물은, 그녀랍니다.
【유우샤】 난 그런 말 못 들었는데.
【크로우】 네, 토아는 마왕을 쓰러뜨리는 게 목적이니까요.
【크로우】 메이드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량한 당신은 틀림없이 그걸 저지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이는 동시에 반역의 뜻이 있다는 걸 악마들에게 알리는 꼴이 됩니다.
【크로우】 마왕을 토벌하려 해도 지금은 평상시보다 많은 악마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안을 무리해서 돌파하는 전략이 결코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을 터.
【크로우】 토아가 그걸 허락할 리 만무하죠.
【유우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해야겠어.
【유우샤】 크로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크로우】 제물의 의식이 치러지는 것은 밤입니다.
【크로우】 마왕의 본거지로 이어지는 샛길을 알고 있으니,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저와 함께 갑시다.
【크로우】 우리 둘이서 마왕을 토벌하는 겁니다.
제물을 바칠 마왕이 없어지면 제물의 의식도 자연히 중단되겠죠.
【유우샤】 ……알았어. 메이드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레그】 어서 와.
【유우샤】 !
【유우샤】 레, 레그. 그, 다녀왔어.
레그 네 이놈! 1회차에선 모르고 넘어갔지만
이젠 안 속는다 에누리 없이 아돌!!
【크로우】 저런. 남의 연애를 방해하면 말한테 걷어차인다는 소리, 들어는 보셨는지?
【레그】 ……
【레그】 유우샤, 옷이 젖었는데.
【유우샤】 앗… 응, 살짝.
【유우샤】 수건으로 잘 닦았으니까 괜찮아.
【레그】 그래.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유우샤】 응, 고마워. 레그.
【레그】 크로우.
【크로우】 왜 그러시는지?
【크로우】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길.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요, 아직은.
【레그】 유우샤에게 위해를 가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어.
아... 그저 레갓...
【크로우】 아아, 혹시…
【크로우】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을 줄이야.
【레그】 ……
【유우샤】 왜, 왜 그래? 싸우지 마.
【레그】 유우샤, 크로우한테서 떨어져. 그 녀석은 위험해.
【유우샤】 응?
【크로우】 이런이런, 기어이 일을 저지르셨군요.
【크로우】 레그야 저리 말하지만 유우샤 씨, 제가 두렵습니까?
두려운가?
✦ 크로우가 두렵다
✦ 크로우를 믿는다
【유우샤】 두렵지 않아.
【유우샤】 말버릇도 나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한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크로우】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네요.
아, 그렇게 됐으니 괜한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레그.
【레그】 ……알았어.
【레그】 방해해서 미안해.
레그는 시원스레 등을 돌려 방에서 나간다.
그러나 얼핏 스쳐지나간 그의 얼굴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미약하지만 죄악감이 싹터, 가슴이 아프다.
【크로우】 ……레그는 당신에게 푹 빠졌나 본데요.
【유우샤】 그, 그래?
【크로우】 네, 듣던 소문과는 사뭇 달라서 놀랐습니다.
【크로우】 원래 그는 타인, 특히 여성에게 무관심했다더군요.
이성에게 무관심하다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건만.
【유우샤】 ?
【크로우】 자,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일단은 여기서 막을 내릴까요.
아까 출입구로 사용한 창고에서 다시 만납시다.
【크로우】 시간은, 주위의 벌레들이 울기 시작할 때에.
【유우샤】 알았어.
【크로우】 아, 그리고 하나 더. 방금 전에 한 말, 기뻤습니다.
【유우샤】 응?
【크로우】 '두렵지 않다'. 저도 남 말 할 처지는 못 되겠군요.
【유우샤】 크로우……
서서히 하늘에서 빛이 사라져 간다.
먹구름이 낀 게 아니라, 오늘 할 일을 마친 태양이 휴식기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인다. 빗소리와 한데 뒤섞여 벌레들이 울기 시작했다.
【유우샤】 (가자.)
침대 옆에 놓인 검을 들고, 나는 침실을 나섰다.
약속 장소에는 나보다 한발 앞서 크로우가 나와 있었다.
내 모습을 보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크로우】 그럼 출발할까요.
【유우샤】 마왕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려?
【크로우】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만, 당신의 그 두 다리로 걷는다면 금방입니다.
【유우샤】 그래? 토아의 마법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니까, 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로우】 그렇긴 하죠.
크로우의 대답에 어딘가 모순이 있는 것 같았지만,
물어봤자 대답해 주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침묵했다.
낮에 비해 빗줄기가 약해졌다고는 해도 바깥은 이미 어둡다.
미지근한 바람을 얼굴에 맞으면서, 보일락 말락 하는 크로우의 뒷모습을 필사적으로 뒤쫓는다.
얼마 안 가 지붕이 있는 장소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주위는 어둠에 싸여 있어, 시선을 집중해야지만 간신히 윤곽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온몸을 적시는 비를 피한 것에 안도하고 있자, 크로우가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크로우】 유우샤 씨, 한 가지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마왕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습니까?
✦ 반드시 마왕을 쓰러뜨리겠다
✦ 마왕을 쓰러뜨릴 자신이 없다
【유우샤】 쓰러뜨릴 거야. 메이드도, 이 세계도 구하겠어.
【크로우】 역시 용사님, 다시금 반했습니다.
【크로우】 저도 힘이 닿는 데까지 서포트하겠습니다.
【크로우】 그럼 여기서부터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므로 기어서 나아갑시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시길.
【크로우】 이미 마왕의 영토에 들어와 있으니, 방심은 금물입니다.
【유우샤】 알았어, 조심할게.
【크로우】 ……
【유우샤】 으악! 뭐, 뭐야.
【크로우】 긴장을 늦추는 건 좋지 않습니다만, 너무 긴장해도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죠.
괜찮습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유우샤】 아, 알았으니까 이거 놔.
【크로우】 정말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가씨군요.
【크로우】 우리는 지금 운명 공동체, 생사를 같이하는 사이 아닙니까.
좀 더 의지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유우샤】 의지하고 있어. 안 그랬으면 같이 오지도 않았겠지.
【유우샤】 자, 가자.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
【크로우】 알겠습니다.
크로우가 시키는 대로 기어서 나아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방이 어두운 탓에 위아래가 분간이 가지 않게 될 무렵.
멀어졌던 빗소리가 다시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가로막혀 있는 만큼 소리에 민감해진 걸지도 모른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귀를 바짝 세운다.
소리가 났다. 심장의 고동이 단번에 빨라진다.
【유우샤】 (뭐지……?)
계속해서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 크로우를 찾아 손을 뻗지만, 있어야 할 모습이 거기에 없다.
【크로우】 뒤에……!
【유우샤】 !!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에 황급히 등 뒤를 돌아 본다.
온통 칠흑으로 뒤덮인 공간 한 켠에,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 누군가가, 있다.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구부정한 몸을 일으켜 세워, 검을 쥐고 단숨에 달려나간다.
반응이 있었다.
검을 뽑자, 그것은 균형을 잃고 힘없이 지면으로 쓰러진다.
와 이겼다! 해피 엔딩!
격하게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이 진정되지 않는다.
마음에 싹튼 나쁜 예감이 서서히 정신을 갉아먹는다.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으니 뺨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비다. 나도 모르는 새에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유우샤】 (맞다, 크로우. 크로우는 어디에……!)
허둥지둥 제자리로 돌아와, 크로우의 모습을 찾아 필사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크로우】 여기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우샤】 크로우? 왜 그런 데 있는 거야. 마왕을 쓰러뜨렸어. 빨리──
【크로우】 그런데 말이죠, 당신은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유우샤】 응?
【크로우】 아무래도 이 앞은 시설 외로 간주되는 것 같으니.
조금 멀겠지만 잠자코 따라와 주시길.
【크로우】 전부 다, 이야기해 드릴 테니까요. 용사님.
【유우샤】 ……크로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생각지도 못한 크로우의 말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현기증이 났다.
【크로우】 이 상태로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겠죠?
【크로우】 지금 서 계신 위치를 기준으로 왼쪽 벽에 손전등이 있습니다.
우선은 그걸 집어서 불을 켜 주세요.
정상적인 사고를 빼앗겨 지휘 계통을 상실한 탓일까.
크로우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몸을, 나는 남의 일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크로우】 아주 잘하셨습니다. 이번엔 손전등이 있던 벽 아래에 선반이 있을 겁니다.
거기에 놓여져 있는 책을 봐 주세요.
【유우샤】 이건, 토아의……?
【크로우】 그렇습니다. 한번 펼쳐 보시죠.
【유우샤】 ……
토아가 늘 들고 다니던 책.
그러나 처음 봤을 때와 달리, 내용물은 그림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 왕국이 마왕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
반격하려고 해도 백성들은 이미 싸울 힘을 잃었다.
그러자 왕국의 마법사가 자신들과 다른 세계로부터 조력자를 부르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
불려온 용사는 아무도 쓰지 못하고 있던 전설의 검을 뽑아 들어,
그 힘으로 훌륭히 마왕을 쓰러뜨렸다. 경사로다, 경사일세.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은, 흔해 빠진 이야기.
【크로우】 그걸 따라한 겁니다.
【유우샤】 어?
【크로우】 이 폐쇄된 세계에서 사육되던 토아는, 신비한 힘을 얻었습니다.
임의의 대상에게 자신이 원하는 환상을 보여줄 수 있는 힘 말입니다.
【크로우】 그는 이 힘을 사용해 이곳의 비극을 멈추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마왕이나 다름없는, 인간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크로우】 여길 경영하고 있던 인간은 상품에 대한 취급이 가혹하더군요.
정말이지, 입에 담기도 힘든 방법으로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습니다.
【크로우】 그러나 아무리 환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게다가 그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이 양계 시설 내로 한정되어 있죠.
【크로우】 그래서 당신을 부른 겁니다.
【유우샤】 ……
【크로우】 그의 환상으로는 인간을 죽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환상에 걸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문득, 움켜쥐고 있던 검에 시선을 떨군다. 거기에는 작고 녹슨 나이프가 있었다.
아아.
나는 말없이 물러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본 적이 있는 외관. 손전등의 불빛이 잠들어 있는 닭들의 모습을 비춘다.
【크로우】 당신은 세계를 구했습니다. 불쌍한 닭들의 세계를 말이죠.
눈을 뜬 닭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나의 위업을 기리는 환호성이었다.
더러워진 작은 양계장 안.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그들의 세계를 구한 날, 나는 나의 세계를 깨뜨렸다.
【크로우】 이봐요, 유우샤 씨.
【크로우】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죄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인간 세계에서의 이야기.
저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크로우】 그래요, 우리의 세계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답니다.
【크로우】 그러니까, 괜찮죠?
【크로우】 ──당신을 이쪽 세계로 데려가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누구를 '용사'로 할지 정할 때, 가장 먼저 그녀가 좋다고 말했다.
이름은 유우샤라고 하는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를 오가는 그 모습을 하늘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행위를 인간 수컷에 비유한다면, 역시 사랑이라고밖에.
인간과 동물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 결말은 말할 것도 없이 비참하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인간이었지만, 마지막엔 닭이 되는 부부의 이야기.
똑같은 일을 하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을 부숴서 자신을 새라고 믿게 만든다.
이 방법이라면 겉모습은 인간과 까마귀인 채. 이상적이다.
포식 관계에 놓여 있는 닭이 협조를 요청했을 때는 그저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나의 바람이 끌어들인 필연이었던 것이다.
토아의 힘이 있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녀는 늘 토아가 있는 양계장의 부지를 거쳐 자택으로 간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이쪽 세계로 데려올 타이밍을 노린다.
하루는 차량 한 대가 그녀를 향해 뛰어드는 걸 눈치챘다.
이대로 가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당황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그 결과, 그녀의 몸은 충돌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차 지상에 내려선다.
그러나 그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양계장을 향해 걸어간다.
몸을 날린 걸 신호로 받아들인 토아가 그녀에게 힘을 사용한 것 같다.
나는 환희의 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과 목적을 이뤘다는 만족감이, 전신을 감싸고 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뒤를 쫓아, 나는 칠흑의 날개를 펼쳤다.
이게 전연령 여성향 게임?
이쯤 되니 레그 엔딩이 양반으로 보일 지경
아무튼 진상도 알았겠다 다음 화에선
만악의 근원 양계장 주인...이 아닌 토아를 만나 보겠습니다
See you later~
오역/오타는 댓글로 남겨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연재 > 내가 세계를 구한 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세계를 구한 날 #8 (완) (0) | 2023.06.04 |
---|---|
내가 세계를 구한 날 #7 (0) | 2023.05.28 |
내가 세계를 구한 날 #5 (0) | 2023.05.21 |
내가 세계를 구한 날 #4 (0) | 2023.05.13 |
내가 세계를 구한 날 #3 (0) | 202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