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이 날씨는 미사일
작성일
2023. 5. 28. 20:06
작성자
금잔향

 

━━━━⊱ 지난 줄거리 ⊰━━━━

 

환상에 살았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동포들의 단말마.

이곳에선 일상적으로 들리는 소리 중 하나다.

생각해 보면 이 힘을 얻은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만능은 아니지만, 자신을 포함한 주위의 물체에 대해 환각을 보여줄 수 있다.

죽음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제격인 능력.

 

그때부터 나는 죽어가는 동포들에게 이 힘을 계속 사용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평온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와 형제지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닭은, 백색 레그혼이라 불리는 품종이다.

레그혼은 알을 낳기 위해 계량된 닭이기에 수컷이 양계되는 일은 드물다.

수컷인데도 이곳에서 사육되는 이유는 품종 개량을 목적으로 한 교배 실험 때문이다.

명확한 목적이 있기에 살려 두는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본분을 다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라고 타일러도, 동생에게는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 같았다.

나는 초조했지만 한편으론 인간한테 사육되는 동물은 이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나날이 며칠 동안 계속됐다.

 

하루는 인간들의 대화에 올아웃이라는 단어가 섞여 나오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됐다.

올아웃. 닭장 안의 모든 닭을 도태시키는 것. 즉, 우리의 죽음이다.

이곳의 경영인은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닭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우리 뒤에 들어올 병아리들 또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닭들과 달라져 버렸다.

죽음을 기다릴 뿐인 동포들에겐 없는 힘이 있다. 지능이 있다.

 

까악하고, 까마귀가 울었다.

이 일대를 영역으로 삼고 있는 그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 구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다. 우릴 구해 줄 용사의 힘이.

제발, 누군가 도와 줘──

 

✦ 듣고 보니 자신이 용사인 것 같기도 하다

✦ 아니, 용사는 아니다

 

【유우샤】 (왠지 흐름 상 맞장구를 쳐 줘야 할 것 같은데.)


3회차까지 온 지금 해피 엔딩을 볼 수 있는 단 한 가지 가능성...

은 잘 모르겠고 토아한테 집 보내 달라고 싹싹 빌어 보자

 

【유우샤】 듣고 보니 제가 용사인 것 같기도 하고……

【토아】 암, 그럼요! 그래야 저의 용사님답죠!

【토아】 휴, 다행이다. 무사히 용사님을 소환한 것 같아서 한숨 놓이네요.

【토아】 참, 임무를 완수하신 뒤에는 제가 책임지고

원래 세계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크로우】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시죠, 우리들의 세계에. 용사 유우샤 님.

【토아】 아, 마침 잘 왔습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처음에 만난 두 명과는 달리, 그 등에는 검은 날개가 나 있었다.

 

【유우샤】 당신도 천사?

【크로우】 천사? 아, 뭔가 착각하신 것 같군요.

【크로우】 저는 크로우. 그저 지나가던 구경꾼이랍니다.

 

【토아】 또또, 사람 헷갈리게 하기는. 이자는 저희의 동료입니다. 일단은 말이죠.

【크로우】 그게 제 신분인 걸 어쩌겠습니까.

【크로우】 하지만 유우샤 씨, 당신에게만큼은 항상 아군이고 싶습니다. 쭉 지켜봐 왔으니까요.

 

【토아】 훌륭한 스토커군요!

【크로우】 뭣하면 그 날개를 잡아 뜯어서 닭꼬치로 만들어 드릴까요? 닭볏머리.

【토아】 꼬, 꼬꼬댁?!

 

【레그】 우린 널 지키는 게 임무야. 마왕을 토벌하러 갈 때도 동행할 거니까, 사이좋게 지내자.

【유우샤】 혼자가 아니라니 든든한걸. 응, 잘 부탁해.

 

【크로우】 토아,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다른 시시콜콜한 일은 내일로 미루는 게 어떨지?

 

【토아】 아, 그렇군요.

 

【토아】 유우샤 씨, 무리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피곤할 텐데 오늘은 푹 쉬세요.

 

【토아】 지금 침실로 안내할 자를 부르겠습니다.

 

✦ 아직 자고 싶지 않다

✦ 잔다

✦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우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피곤하던 참이었거든요.

 

【유우샤】 (혼자서 상황을 정리하고 싶기도 하고.)

【레그】 유우샤.

【유우샤】 ?

 

【레그】 널 지키다가 여차하면 토아를 위협해서라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줄게.

【레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

【유우샤】 ……고마워.


지금 당장 돌려보내 주세요 지금 당장!!

 

【토아】 저는 천하의 몹쓸 놈입니까.

【토아】 뭐, 이번 일은 당신의 의사를 무시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토아】 일단 지금은 푹 쉬세요.

【유우샤】 네.

 

【메이드】 실례합니다.

【유우샤】 (여자애네.)

 

【토아】 아, 왔군요.

【토아】 여기 계신 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용사님이십니다.

정중히 안내해 주세요.

 

【메이드】 용사님.

네, 알겠습니다.

 

【메이드】 저, 이 짐은 어떻게 할까요?

용사님의 소지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보자 낯익은 물체가 눈에 띈다.

역 앞에서 구입한 식료품이 가득 담긴 쇼핑백이다.

【유우샤】 아, 다행이다. 이것도 같이 왔구나.

 

【크로우】 호오, 음식입니까?

【유우샤】 네, 맞아요.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잡품도 몇 개 있고요.

【유우샤】 토아 씨, 만약 마왕을 쓰러뜨린다고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토아】 물론 용사님께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죠.

【토아】 절차는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준비할 게 하나 있지만,

그것만 끝나면 마법으로 단숨에 마왕의 본거지까지 날아가면 됩니다.

【토아】 큰 문제만 없다면 이삼일 안에 마무리될 겁니다.

【유우샤】 알겠어요. 그 정도면 여기서도 어찌저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토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토아】 그럼 슬슬 주무셔야죠. 메이드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크로우】 안녕히 주무시길, 용사님.

【레그】 잘 자.

【유우샤】 안녕히 주무세요.

 

【메이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용사님.

 

【유우샤】 고마워. 그런데 여기선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거야?

 

【메이드】 식사는 조직 내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용사님의 몫도 준비했습니다만, 크로우 님께서 필요 없다고…

【유우샤】 어?

 

【메이드】 용사님은 우리와 먹는 게 다르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용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새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유우샤】 그래? 으음, 당분간은 어찌저찌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괜찮아.

【메이드】 알겠습니다, 용사님.

【유우샤】 저기.

【메이드】 네.

 

✦ 이름을 알려준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유우샤】 난 유우샤라고 해. 용사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면 안 될까?

 

【메이드】 유우샤 님.

유우샤 님이라, 멋진 이름이네요.

【메이드】 알겠습니다…!

 

【유우샤】 네 이름은 뭐야? 물어봐도 돼?

【메이드】 저는 메이드입니다.

 

【유우샤】 아, 아니. 그거 말고 이름.

【메이드】 메이드입니다.

【유우샤】 …응, 그렇구나.

【유우샤】 (이름이 메이드인가? 직책이랑 똑같네.)

 

【메이드】 유우샤 님, 이 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유우샤】 응, 알았어.

그럼 잘 자, 메이드.

【메이드】 네. 안녕히 주무세요, 유우샤 님.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유우샤】 고마워.

 

……

눈을 감는다.

가느다란 빗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유우샤】 (이세계에도 비가 오는구나.)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일에 현실성이 없다.

이대로 잠에 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쨍한 노을은 이세계로 이어지는 문이며, 나는 잠시 그 안에서 헤맸을 뿐.

눈을 뜨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낯익은 거리가 펼쳐져 있고
이세계에서의 신기한 체험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유우샤】 (……잠이나 자자.)

 

생각보다 피곤했는지, 의식은 곧바로 어둠에 잠겼다.

──

 

【유우샤】 (……아침?)

 

【유우샤】 (원래 세계로 돌아오진 못한 건가. 비는 그친 것 같네.)

【유우샤】 (일어나야겠다.)

(노크 소리)

 

【유우샤】 네, 들어오세요.

 

【메이드】 안녕하세요!

【유우샤】 안녕.

【메이드】 유우샤 님, 어젯밤은 푹 쉬셨습니까?

 

【유우샤】 응, 괜찮아. 푹 잤어.

깨우러 와 줘서 고마워.

【메이드】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메이드】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얼마 없습니다만,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메이드】 유우샤 님의 부탁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우샤】 아하하, 믿음직하네.

【유우샤】 ……

【유우샤】 저기, 뭣 좀 물어봐도 될까?

【메이드】 네, 무엇이든지.

 

✦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야?

✦ 오늘의 일정은?

【유우샤】 오늘 일정은 뭐야? 용사니 뭐니 해도 어제 막 온 참이라 잘 모르겠어.

 

【메이드】 그 얘기라면 토아 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전설의 검을 가지러 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유우샤】 전설의 검?

【메이드】 네.


【메이드】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필요한 검입니다.
그 검으로만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우샤】 흐음, 그렇구나.

 

【메이드】 유우샤 님,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불안하신가요?

【유우샤】 어? 아─ 응, 조금은.

【메이드】 그런가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우샤】 왜?

 

【메이드】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레그 님이 계시잖습니까.

【메이드】 레그 님은 저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유우샤 님을 사모하고 계신 듯하니,

여차할 때는 반드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실 겁니다.

【유우샤】 그, 그래?

【메이드】 네, 그러니 안심하세요.

 

【메이드】 준비가 되면 토아 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우샤】 고마워. 준비는 끝났으니 갈까?

【메이드】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제가 보기에 올아웃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내일쯤 뭔가 움직임이 있을지도.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크로우.

별말씀을. 조만간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는군요.

……

 

【메이드】 토아 님, 용사님을 모셔 왔습니다.

【토아】 아, 고마워요.

 

【토아】 좋은 아침입니다, 유우샤 씨. 어젯밤은 푹 주무셨나요?

【유우샤】 안녕하세요, 덕분에 잘 잤어요.

【토아】 다행이다.

【유우샤】 오늘은 뭘 할 건가요?

 

【토아】 비도 그쳤으니 소풍이라도 갈까요?

전설의 검이 있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레그】 전설의 검.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

【토아】 그 말대로. 마왕은 그 검으로만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토아】 이와는 별개로 검에는 한 가지 역할이 더 있습니다.

용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그 검은 진정한 주인이 만지면 빛을 발한다고 합니다.

 

【토아】 이제 와서 그걸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만졌을 때 검이 빛난다면 당신은 틀림없는 용사라는 게 되겠지요.


【유우샤】 만약 검이 빛나지 않으면 어쩌죠?

【토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용사는 당신이니까요.

【유우샤】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토아】 만약 검이 빛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지겠군요.

【토아】 그때는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유우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토아】 네.

 

【토아】 그럼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합시다.

검이 안치된 장소까지 마법으로 이동할 겁니다.

 

【크로우】 잘 다녀오시길.

【유우샤】 크로우 씨는 안 가시나요?

【크로우】 네, 다른 할 일이 있거든요. 아쉬우신지?

【유우샤】 전혀 아니거든요.

【크로우】 이런, 매정하신 분.

뭐, 아무쪼록 살펴 가시길.

 

【크로우】 그리고 그렇게 꼬박꼬박 경칭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존댓말도 필요 없습니다.

【토아】 아, 그렇네요. 애초에 존대해야 할 입장은 저희고.

【토아】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만 해 주세요, 유우샤 씨.

 

【크로우】 그렇다면 토아, 신들린 척 혼자 중얼거리면서

부지에 난 잡초를 전부 뽑아 주시길.

【토아】 기꺼이!

 

【유우샤】 아니아니, 기쁜 얼굴로 받아들이지 마. 그런 건 안 해도 돼.

【크로우】 흐음, 그렇습니까?

 

【크로우】 그럼 좋아하는 아이의 이름이라도 말하게 해 볼까요?

【유우샤】 초등학생도 아니고. 지금부터 검을 가지러 가야지.

【크로우】 성실하시군요.

【유우샤】 이봐요 당신들이 필요하다고 날 부른 거 아니었어? 혹시 날 속인 거야?

 

【레그】 아니, 정말 필요해. 네가 없으면 우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전멸한다.

【유우샤】 그 정도로 상황이 나빠?

【레그】 응, 크로우는 아니지만.

【유우샤】 어?

【크로우】 그렇네요, 전 외부인이라서. 아주 여유만만하답니다.

 

【토아】 외부인이라도 보수를 받는 이상 제대로 일해 주셔야 합니다, 크로우.

【크로우】 그야 물론.

【크로우】 제가 여러분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으니,

먼저 출발해야겠군요. 나중에 봅시다.

【유우샤】 응, 잘 다녀와.

 

【레그】 우리도 가자. 유우샤.

【유우샤】 아, 그래. 필요한 물건도 다 챙긴 것 같아.

【레그】 응.

【토아】 그럼 출발할까요.

 

토아의 마법으로 다다른 곳에는 석조 건물이 있었다.

어젯밤 비가 내린 탓인지 발밑은 질퍽거렸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이 기분 좋다.

【토아】 자,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갑시다. 검은 이 안쪽에 있습니다.

【유우샤】 알았어, 가자.

 

【레그】 유우샤.

【유우샤】 아,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거지? 알았어.

【레그】 응.

 

【토아】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으신 거죠?

 

【토아】 그보다 당신들, 만난지 얼마 안 됐는데도 사이가 좋네요.

【유우샤】 어, 그래?

【토아】 지금도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어떻게 레그가 말하고 싶은 걸 이해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군요.

 

【토아】 형인 저조차도,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유우샤】 으음, 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나 할지.

【유우샤】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 레그하고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왜일까?

【레그】 ……

 

【토아】 레그도 처음부터 당신에게 호의적이었죠.

형으로서는 복잡한 심경입니다만, 혹시 레그 같은 타입이 이상형인가요?

 

✦ 꽤 좋다

✦ 토아가 더 좋다

 

【유우샤】 그런 의미라면 토아가 이상형에는 더 가까울지도.

 

【토아】 ……네?

【유우샤】 그러니까, 굳이 어느 쪽인지 말하자면 토아가 타입이라고.

 

【토아】 네?

【유우샤】 내 말 듣고 있어? 토아가 물어보길래 대답해 준 건데.

【토아】 아, 네.

【유우샤】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줘.

 

【토아】 저, 그게. 굉장히 뜻밖이라고나 할지…

【유우샤】 의외라니, 애초에 내 취향도 모르잖아.

【유우샤】 거기다 이상형을 말한 것뿐인데,

무슨 사랑의 고백이라도 받은 사람마냥 동요할 것까지야.

 

【토아】 그래도 이성으로서 의식하는 범위 내에 있다는 거군요. 후후, 그래─ 그렇구나!

【유우샤】 ……

【유우샤】 역시 기분 나쁘니까,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

【토아】 이럴 수가?! 나의 두근거림을 돌려줘!

 

【토아】 자.

【토아】 다 왔어요. 여기입니다.

【유우샤】 저 제단 위에 검이?

【토아】 그렇습니다. 용사님, 부디 검을 그 손에.

 

시키는 대로 제단에 올라가, 꽂혀 있는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댄다.

순간, 희미한 빛이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토아】 그 상태로 검을 뽑아 주세요.

【유우샤】 으, 응.

 

검은 상당히 깊이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뽑으려고 했다.

【유우샤】 우왓……

 

【토아】 유우샤 씨!

 

대좌에 꽂혀 있던 검이 스르륵하며 빠진다. 가볍다.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예상치 못한 무게에 내 몸은 뒤로 넘어──

【유우샤】 아.

 

【토아】 ……

 

나의 몸은 넘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토아가 내 양어깨를 받치고 서 있다.

【유우샤】 미안해, 토아. 고마워.

【토아】 ……

【유우샤】 토아?

 

몸이 떨린다.

아니, 다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토아의 몸이 경련을 일으켜,

그 떨림이 나한테까지 전해지고 있다.

【유우샤】 잠깐, 토아. 정신 차려!

【토아】 헉.

 

순식간에 토아의 손이 내 어깨로부터 멀어진다. 그와 동시에, 토아의 경련이 멈췄다.

【유우샤】 갑자기 왜 그래?

【토아】 죄송합니다……

 

【토아】 한심하게 들리실지 몰라도, 인간한테 닿으면 몸이 저절로 떨리거든요.

【유우샤】 응? 무슨 말이야?

【토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아마, 공포증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우샤】 그, 그랬구나. 미안해.

【토아】 아뇨! 저야말로.

【토아】 유우샤 씨, 검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그 검이라면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어요.

【유우샤】 응…… 하지만 검을 손에 넣었다고는 해도,

이걸로 어떻게 마왕을 쓰러뜨린다는 거야?

【유우샤】 검 같은 건 써 본 적도 없는데.

 

【레그】 우리가 서포트할게.

 

【토아】 그렇네요.

 

【토아】 더욱이 마왕은 그 검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검을 보면 틀림없이 당황해서 빈틈이 생기겠죠.

 

토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볍게 검을 위아래로 휘둘러 본다.

검은 어느새 손에 익어, 이 정도면 확실히 당황해

움직일 수 없게 된 상대와 싸우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유우샤】 그럼 돌아갈까.

【레그】 응.

 

【토아】 이곳은 검을 지키고 있던 마법의 영향이 있으니,

아까 들어온 건물의 입구로 돌아갑시다. 거기서 이동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유우샤】 그래.

 

【메이드】 어서 오세요.

【유우샤】 다녀왔어.

【메이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유우샤】 용사라고 해도, 난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크로우는 아직 안 왔나 보네.

【메이드】 저녁 때쯤에야 귀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토아】 그러면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크로우가 돌아오고 나서 얘기하는 걸로 하죠.

【토아】 저는 그동안 잡무를 처리하겠습니다.

【유우샤】 그래. 레그는 어떻게 할 거야?

【레그】 음. 유우샤가 여기 있을 거라면, 나도 남을게.

 

✦ 레그와 시간을 보낸다

✦ 토아가 신경 쓰인다


【유우샤】 그럼 난 토아를 거들게.

 

【토아】 어라,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유우샤】 응. 난 뭘 하면 될까?

【토아】 그렇네요. 우선은 자리를 옮길까요?

 

【유우샤】 여긴 내가 눈을 뜬 장소네.

【토아】 네.

【토아】 원래는 무기 같은 걸 보관하는 장소입니다만,

인적도 없고 조용해서 걱정거리가 있을 때 요긴하게 쓰고 있죠.

 

【유우샤】 아하.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 거야?

【토아】 전 여기서 앞으로의 작전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 유우샤 씨는 포즈를 취하면서

'토아를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마왕을 쓰러뜨려 줄게 ☆'라고 말해 주세요.

【유우샤】 거절하겠습니다.

 

【토아】 즉답이라니!! 좋은 작전이 번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우샤】 그건 그렇고, 마왕을 쓰러뜨리겠다는 말이 그렇게 좋은 거야?

【토아】 ……

 

【토아】 네, 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고백이니까요.

【유우샤】 흐음.

【토아】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답변, 감사합니다.

 

【유우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게임처럼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해서

이 세계가 평화로워지는 것도 아니잖아.

【유우샤】 마왕 말고도 수많은 악마들이 남아 있을 텐데.

【토아】 뭐,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토아】 그래도 최소한 마왕이 저희에게 건 저주는 풀 수 있겠죠.

【유우샤】 아, 그런가?

【토아】 그러니 마왕은 반드시 쓰러뜨려야만 합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게 저의 유일한 소원이에요.

 

【유우샤】 토아는 이 세계와 동료, 둘 다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

【토아】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착잡한데요.

【유우샤】 그게 무슨 의미야? 칭찬하는 거라고, 일단은.

 

【토아】 아뇨, 저야 기쁘지만… 솔직히 버럭 화를 낸다 해도 시원찮을 판국이잖습니까.

【유우샤】 응?

【토아】 저희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당신을 소환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희의 사정일 뿐, 당신하고는 관계가 없죠.

 

【토아】 다짜고짜 소환해서 용사로 떠받드는 것도 모자라

마왕을 쓰러뜨려 달라니, 그야말로 민폐라고밖에.

【유우샤】 아, 으음─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유우샤】 그렇지만 곤란한 사람이 눈앞에 있을 때,

그 사람을 도와줄 힘이 있다면 도와준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 아닐까?

 

【토아】 ……

 

【유우샤】 뭐, 그러니까 나한테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사태가 꽤 심각한 거지?

【토아】 네,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서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토아】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유우샤】 그렇구나.

 

【유우샤】 그럼 마왕도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작전을 세워 볼까!

【토아】 ……고마워요.

그 뒤 서로 이러쿵저러쿵 언쟁을 벌이면서 작전을 짰다.

돌이켜 보면 쓸데없는 소리가 태반이었던 것 같지만,

토아는 시종일관 기분이 좋아 보였으니 기분 전환 정도는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잘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크로우가 돌아왔다.

밤이 깊었으니 마왕과 싸우는 것은 내일이나 모레,

때를 봐서 결행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해산했다.

어젯밤처럼 메이드에게 침실로 안내된다.

 

【메이드】 그 검, 주무실 때도 갖고 계실 건가요?

지적을 받고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현대 일본에서 살던 사람이 무기를 들고 잠자리에 눕는다니,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안 그래도 '네가 무사냐!'하고 방금 전 스스로 지적한 참이었다.

 

【유우샤】 으, 응. 잃어버리면 큰일이니까.

오늘 가지고 돌아온 전설의 검을 꼭 잡는다.
메이드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 그렇군요. 유우샤 님의 곁에 두는 편이 더 안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우샤】 그, 그래? 이상하지 않아?

【메이드】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유우샤】 응, 조심할게. 그런데 너희 종족은 다들 머리카락이 붉은색이야?

【메이드】 그 말씀대로입니다.

 

【유우샤】 그래? 천사는 금발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아니었구나.

【메이드】 어릴 때는 그런 색이죠, 확실히.

【유우샤】 흐음, 어른이 되면 바뀌나 보네.

 

【메이드】 네. 오늘은 대업을 이루느라 피곤하셨을 테니, 푹 쉬세요.

【유우샤】 응, 고마워. 내일 보자.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어쩌면 내일 마왕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성 없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오직 내 안에 숨어있는 초조감만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잠이 달아나서,

아무래도 침대가 불편한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는 피곤한 탓에 몰랐지만, 너무 푹신푹신해 아무래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유우샤】 (그렇지만 달리 잘 곳도 없고…… 그보다 내일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자야지.)

끙끙대면서 침대 위를 뒹굴거리다가

간신히 잠을 청한 것은 날이 밝기 시작하고 나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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