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줄거리 ⊰━━━━
오늘도 주인공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유우샤】 으음……
【메이드】 벌써 해가 중천에 떴습니다만, 아직도 주무시나요?
【유우샤】 응?
【유우샤】 ……헉!
【유우샤】 (늦잠 잤다!)
【유우샤】 미, 미안!! 들어와도 돼!
【메이드】 실례합니다.
【유우샤】 미안해! 늦잠 자 버려서……!
【메이드】 역시, 주무시고 계셨군요.
【메이드】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주무시는 중이라면 되도록 삼가려고 했습니다만,
유우샤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유우샤】 아냐아냐, 깨워 줘서 고마워!
【유우샤】 오늘 가는 거지? 마왕을 쓰러뜨리러!
【메이드】 그 얘기 말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폭우가 내려 내일로 연기한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유우샤】 어?
【유우샤】 아, 그렇구나.
【메이드】 네, 다시 주무실 건가요?
【유우샤】 아냐. 모처럼 깨워 줬으니까, 일어나야지.
【메이드】 그럼 몸단장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기쁜 듯이 그렇게 말한 메이드는 나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는 힘 조절은 절묘해서, 자칫하면 곯아떨어질 것 같다.
【메이드】 아프지는 않으신가요?
【유우샤】 전혀! 능숙하네.
【메이드】 감사합니다. 저, 유우샤 님.
【유우샤】 음─……?
【메이드】 그 밖에, 달리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유우샤】 지금 하고 있는데, 뭘. 기분 좋다~
【메이드】 그런가요?
【메이드】 그래도 필요하신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유우샤】 왜 그래?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은데?
【메이드】 ……아뇨.
【메이드】 그, 다만 유우샤 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유우샤】 이미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는걸.
【유우샤】 아, 정 그렇다면 뭣 좀 물어도 괜찮을까?
【메이드】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유우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거든. 으음…
누구에 대해 물어볼지 생각한다.
✦ 레그에 대해 묻는다
✦ 토아에 대해 묻는다
✦ 크로우에 대해 묻는다
【유우샤 】 토아는 어때?
【메이드】 토아 님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 뒤, 메이드는 사색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토아는 메이드의 상사(?)인 것 같고, 여러모로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유우샤】 아, 미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네.
【메이드】 아뇨,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막막해서……
【메이드】 별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계셔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만, 그분께 구제받은 자는 여럿 있습니다.
【유우샤】 구제?
【메이드】 네, 토아 님께는 신비한 힘이 있으니까요.
【유우샤】 아, 마법. 그렇네.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메이드】 제가 아는 한, 일족 중에서도 그 힘을 쓸 수 있는 건 토아 님뿐입니다.
【유우샤】 오호. 찬밥 신세라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꽤 의지가 되고 있다는 거네.
【메이드】 그렇습니다.
【메이드】 다만 토아 님께서는, 악마에게 감금되고 나서부터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꺼리시는 것 같더군요.
【유우샤】 토아가?
【메이드】 네. 무사히 돌아오셨으나, 곳곳에 심한 부상을 입으신 듯했습니다.
【유우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메이드】 유우샤 님, 머리카락 정돈이 끝났습니다.
【유우샤】 고마워! 비 오는 날은 습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붕 떠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정리해 준 덕분에 살았어.
【메이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유우샤】 늘 신세만 져서 미안한걸. 나도 뭔가 답례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마왕도 쓰러뜨리지 못했고.
【메이드】 답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기쁩니다.
【유우샤】 음─ 그래도 난 신세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유우샤】 그래 봤자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쇼핑백 안에 있는 게 다지만.
별다른 기대는 할 수 없었으나, 뭔가 줄 수 있는 게 없을지 침실의 구석에 놓인 봉투를 뒤적인다.
가져온 쇼핑백은 물건을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바닥이 깊게 파여 있다.
안쪽에 담긴 것을 꺼내기 위해서, 윗쪽에 쌓여 있는 물건을 차례차례 바닥으로 내던진다.
【메이드】 어라, 이건?
【유우샤】 응─? 아, 벚꽃 새우 건어물이네.
【메이드】 색깔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유우샤】 그러게. 이름처럼 벚꽃색이라 귀엽지?
【메이드】 어디에 쓰는 건가요?
【유우샤】 음식이야. 한번 맛을 볼래?
【메이드】 네.
【유우샤】 특별히 이상한 건 안 들어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자.
【메이드】 ……
【유우샤】 마, 맛없어? 하긴 먹는 게 다르다고 했으니까, 역시 뱉어내는 게─
【메이드】 맛있습니다!
【유우샤】 오오~
【메이드】 좀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유우샤】 응, 물론이지. 근데 먹어도 아무렇지 않아?
【메이드】 네!
【유우샤】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
【메이드】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유우샤】 괜찮아, 메이드한테 주려고 꺼낸 거니까.
【메이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께 드려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우샤】 아, 그런가?
【메이드】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하니, 아마 아무도 외출하지 않으실 겁니다.
【메이드】 유우샤 님께서 얼굴을 비추시면 다른 분들도 기뻐하실 테죠.
【유우샤】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따분하니 잠깐 갔다 올게.
【메이드】 네, 다녀오세요.
【유우샤】 아,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좋은 아침.
【레그】 좋은 아침.
【크로우】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니까요. 좋은 아침입니다.
【토아】 안녕하세요, 유우샤 씨. 메이드에게 이야기는 들으신 것 같네요.
【토아】 보시다시피 비가 와서, 마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실망을 안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유우샤】 아니, 그건 괜찮지만. 비 때문에 연기한다는 건, 마왕은 실외에 있는 거야?
【토아】 아뇨. 악마들이 비를 싫어하는지라, 마왕의 성에 총집합해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유우샤】 아, 그렇구나. 나도 비 오는 날에는 집에 눌러앉기 십상이니까.
【토아】 가급적 위험은 무릅쓰고 싶지 않으니. 이날 이때까지 주도면밀히
계획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만, 이왕이면 쓸데없는 걱정거리는 적은 게 좋겠죠.
【유우샤】 응, 그렇네.
【크로우】 호오, 그것은 이 세계에 왔을 때 가지고 있던 식재료입니까.
【유우샤】 아, 그래그래. 난 이곳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지만 너희는 어때?
【크로우】 음식에 따라 다르죠. 인간의 손을 거친 게 아니라면 대부분 문제 없습니다.
【크로우】 어디 보자. 흐음, 과일류는 먹을 수 있겠네요. 먹어도 될지?
【유우샤】 물론 되고말고. 때늦은 점심 식사가 되겠네.
【토아】 크로우, 그녀의 몫까지 빼앗지 말아 주세요. 가까운 시일 내로
담판을 지을 거라고는 해도, 머무는 동안 식량이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크로우】 확실히 그렇군요.
【토아】 그렇죠.
【크로우】 그럼 유감입니다만 토아의 몫은 없는 걸로. 기특하네요.
【토아】 ……네.
【유우샤】 아─ 괜찮아, 괜찮아. 생과일은 못 먹으니까, 오히려 먹어 주면 나야 땡큐지.
【레그】 맛있어.
【유우샤】 정말? 잘됐다. 자, 토아도.
【토아】 여신님!
【유우샤】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부르네.
【레그】 잘 먹었어.
【토아】 잘 먹었습니다. 이야, 맛있었다.
【유우샤】 껍질까지 다 먹었구나. 깜짝 놀랐어.
【크로우】 워낙 훌륭한 맛이라.
【유우샤】 기뻐해 주니 다행이다. 다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토아】 괜찮으시다면 오늘 하루, 저와 보내지 않겠습니까.
【유우샤】 토아의 권유라─ 좋았어, 바라던 바다!
【토아】 감사합니다. 그럼 갈까요, 저의 용사님.
【크로우】 이거야 원.
【크로우】 도대체 언제 사이가 좋아진 거죠? 토아 주제에 건방지긴.
【토아】 이건 또 무슨 놀부 심보?!
【레그】 잘됐다, 토아. 꿈이 이뤄져서.
【토아】 응?
【레그】 어제 잠꼬대로 그랬잖아. '나, 이 싸움이 끝나면 유우샤에게 고백하겠어'라고.
【토아】 나도 모르는 새에 사망 플래그가……
【유우샤】 사랑받고 있구나~ 토아.
【토아】 그런가요? 그럼 그 환상이 깨지지 않게, 슬슬 이동합시다.
【유우샤】 응.
왠지 주변에서 우릴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하는 수 없이 내 침실로 오게 되었다. 딱히 깊은 의미는 없겠지만 살짝 의식하게 된다.
의자가 없는 관계로, 침대에 둘이서 걸터앉는다. 이 자세도 영 좋지 않다.
평상시엔 거리를 두고 있는 토아의 몸이 가깝다.
【유우샤】 날씨에 따라선 내일 마왕의 본거지에 가게 될 수도 있는 거네.
작전 지휘는 토아가 하는 거야?
【토아】 크로우에게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겠군요.
【유우샤】 그래.
【유우샤】 아, 내일 준비는 괜찮겠어? 내가 없는 게 나았으려나.
【토아】 제가 불렀는데요, 뭘. 함께 있어 주세요.
【유우샤】 으, 응.
【유우샤】 그럼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피곤할 테고── 미안, 남이 만지는 건 싫다고 했지.
【토아】 글쎄, 어떨까요.
【유우샤】 어?
【토아】 당신이 저항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 괜찮을지도 모르죠.
✦ 거절한다
✦ 남을 멀리하는 건 악마에게 부상을 입은 탓이냐고 묻는다
【유우샤】 토아의 그 공포증은, 악마에게 부상을 입은 탓?
【토아】 아, 메이드에게 들으셨나 보군요.
【유우샤】 응, 미안.
【토아】 그렇네요. 그 후로 남이 만지려고 하면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유우샤】 그렇구나.
그 말은 즉, 앞으로 평생 누구와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걸까.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으려는 연기라면 최악이지만,
검을 가지러 갔을 때의 행동을 생각하면 사실이겠지.
나는 침대에 엎드려 누워, 양손을 펼쳤다.
【토아】 ……
【유우샤】 이러면 어때! 구워먹든 삶아먹든 마음대로 해!
【토아】 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우샤】 우왓.
【토아】 ……
【유우샤】 ……
【토아】 신기하네요, 이렇게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건.
【유우샤】 토, 토아는 키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아하하.
【토아】 무서워?
【유우샤】 저. 그게, 그.
【토아】 알아들을 수 있게, 부디.
【유우샤】 무, 무섭지 않아.
【토아】 그래.
너굴맨! 전연령 연재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유우샤】 아!
【토아】 ……
【유우샤】 저기, 토아! 이, 이제 만져도 아무렇지 않아?
【토아】 그런 것 같네요.
【유우샤】 으악, 잠깐잠깐!
【토아】 왜 그러시죠?
【유우샤】 아니. 가, 갑자기 졸려서. 모처럼이니까 같이 낮잠이라도 잘래?
【토아】 ……
【유우샤】 ……미, 미안.
【토아】 그럼 그렇게 할까요.
【유우샤】 어, 그래도 되겠어?
【토아】 어젯밤에 아무개 씨는 한숨도 못 잔 것 같으니.
【유우샤】 윽, 들켰네.
실없는 대화와 빗소리, 바싹 붙어서 느껴지는 체온이 기분 좋다.
【토아】 잘 자요.
다정한 목소리.
좀 더 온기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수면 부족으로 지친 몸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평온한 잠 속에서,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에 의식이 깨어난다.
그러나 밀려오는 졸음에 누가 꿰매 놓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떠지지 않는다.
【유우샤】 (누구……?)
다정한 손놀림. 이 손을 나는 알고 있다.
이윽고 손이 멀어져 간다. 사라진 온기가 서운하다.
무심코 매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졸음에 이길 수 없는 나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무의식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갔다.
【유우샤】 ──엣취!
방금 전까지 들리던 빗소리가 어느새 그쳤다.
침실의 침대 위에서 나 홀로 눈을 떴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공기가 차갑다.
【유우샤】 얼마나 잔 거지……
밖은 아직 환하다. 그렇다는 건 시간은 그다지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우샤】 아침이라면 메이드가 깨우러 왔을 텐데. 일단 다른 방에 가 보자.
【유우샤】 아, 다들 여기 있었구나.
【레그】 좋은 아침.
【크로우】 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유우샤】 응?
【토아】 안녕하세요, 유우샤 씨. 비도 그쳤으니 오늘은 마왕의 본거지로 갈 겁니다.
【토아】 채비를 부탁드립니다.
【유우샤】 아, 안녕…… 혹시, 벌써 하루가 지난 거야?
【레그】 응, 비가 온 지 하루가 지났어.
【크로우】 푹 주무신 것 같군요.
【유우샤】 그런가 봐. 메이드가 오지 않았으니까, 아직 저녁이겠거니 했어.
【크로우】 아아.
【크로우】 그녀라면 잡아먹혔습니다.
【레그】 크로우.
【유우샤】 응?
【크로우】 왜 화를 내시는지? 저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유우샤】 무슨 말이야, 도대체?
【토아】 ……
【토아】 악마들은 저희에게 일정한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이번 제물은, 그녀였습니다.
【유우샤】 뭐? 하지만… 어떻게 그런.
【토아】 진정하세요, 유우샤 씨.
【유우샤】 그럴 수가.
✦ 경악한다
✦ 화를 낸다
【유우샤】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
【유우샤】 어째서. 어째서 말해 주지 않은 거야!
【토아】 말해 봤자 당신만 괴로울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유우샤】 그렇지 않아! 어제 마왕을 쓰러뜨리러 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잖아!
【토아】 어제는 저희가 불리했습니다.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제가 당신을 보낼 거라고 생각합니까.
【유우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메이드를 죽게 내버려 둔 거냐고!
【토아】 그녀가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유우샤】 무슨……
【토아】 지금 악마들에게 저희의 계획이 들통나면 끝장입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순순히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었죠.
【토아】 그녀가 제물이 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사항이므로 번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만난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유우샤】 싫어.
【토아】 ……
【유우샤】 이런 건, 싫어.
【토아】 유우샤 씨.
【유우샤】 손대지 마!
【토아】 ……
눈물 때문에 토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슬퍼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이성으로는 알고 있는데, 감정이 따라잡지 못한다.
【토아】 ──유우샤 씨.
이름을 불린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에게 멋진 이름이라며 칭찬을 받았었다.
기쁜 듯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녀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유우샤】 ……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토아】 그녀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토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은 마왕을 시중드는 악마의 수도 적어서,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합시다.
【토아】 가실 거죠?
【유우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면서 침실로 돌아가 출발할 채비를 한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침대 옆에 놓인 검을 잡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메이드는 확실히 이 방에 있었다.
떠나간 소녀에게 잠시 묵념하고, 방을 나온다.
【토아】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유우샤】 아냐. 내가 화풀이한 것뿐인걸.
【유우샤】 미안.
【토아】 천만에요. 메이드를 위해서 화내 주신 그 마음은 기쁩니다.
【유우샤】 …고마워.
【레그】 가자.
【유우샤】 응.
【크로우】 저는 이곳에 남아 악마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죠.
【토아】 부탁합니다.
【크로우】 그럼 무운을.
이동 마법으로 도착한 곳은 어둡고 습한 지하 수로였다.
토아의 말에 따르면, 이 방치된 수로가 마왕에게 들키지 않는 아슬아슬한 범위인 것 같다.
필연적으로 여기서부터의 길은 도보가 된다.
피부에 착 달라붙는 냉기와 습기, 독특한 악취가 불쾌감을 자아낸다.
그다지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레그】 발밑을 조심해.
【유우샤】 알았어.
벽을 의지하면서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신중히 나아간다.
얼마쯤 가자 지하철의 통로 같은 장소가 나왔다.
다만 도폭이 좁아, 한 사람씩밖에 통과할 수 없다.
【토아】 여긴 샛길이라 적과 마주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토아】 그래도 소리는 가능한 한 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곳을 나가면 마왕이 있는 장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수긍한다. 소리를 내지 않게 살그머니 검을 고쳐 잡았다.
토아가 선두, 그 다음이 나. 맨 뒤에 레그가 서서 대열을 이룬다.
조용한 행군이 계속된다.
주위는 어둠에 싸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안 되는 소리와 기척을 의지해
한 걸음씩 나아가지만, 점차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어둠 속에서 언제 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토아】 괜찮습니까?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고, 그와 동시에 토아의 속삭임이 귀에 들린다.
【유우샤】 응.
【레그】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유우샤】 고마워.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안도하면서,
작게 숨을 내쉬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몇 개의 갈림길에서 토아는 망설임 없이 나아갔고, 나와 레그도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탁 트인 장소가 나왔다.
감도는 공기가 한층 차가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쓰러뜨려야 할 상대, 마왕이 있다.
눈앞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결국 주인공이 범죄자가 된다는 미래는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옛말에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렛츠 댄스!
【토아】 중앙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토아】 유우샤 씨, 제가 해제 마법을 외울 테니 중앙문의 우측에 있는 핸들을 밑으로 내려주시겠어요?
【유우샤】 응, 알았어.
토아가 영창한 후, 시키는 대로 핸들을 조작한다. 그러자 단번에 문이 열렸다.
【토아】 이 앞에 마왕이 있습니다.
토아의 말에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토아】 ……
【토아】 유우샤 씨.
【유우샤】 네.
【토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마왕을, 쓰러뜨려 주시겠습니까.
✦ 쓰러뜨리겠다
✦ ……
【유우샤】 쓰러뜨리겠습니다.
【토아】 ……고마워요.
말을 마치자마자 토아는 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그 칼날을 자신의 머리카락에 대고 서슴없이 휘두른다.
【유우샤】 아.
떨어져 나간 붉은 머리카락이, 마치 피처럼 지면에 흩어졌다.
【레그】 토아.
【토아】 그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알아 두고 싶어서 말이야.
【토아】 가자, 유우샤.
【유우샤】 응……!
바로 그때였다.
배후에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 보니, 누군가가 있었다.
【레그】 유우샤, 물러서.
뒤틀린 뿔에 악의가 담긴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
그가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유우샤】 마왕……!
떨리는 손을 억누르면서, 검을 꽉 쥔다.
【토아】 여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지만── 이미 늦었다!
나를 감싸듯이 앞에 선 토아는, 기적을 일으키는 주문을 자아낸다.
마왕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마법으로 만들어진 빛이 작렬해,
그 자리를 순식간에 하얗게 물들였다.
【마왕】 크아아아아아아.
짐승의 것과 다름없는 포효가 울린다.
【토아】 내 마법으로는 마왕을 쓰러뜨릴 수 없어. 유우샤, 그 검으로 놈을──!
토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검을 낮게 들고, 그 몸에 힘차게 칼날을 찔러 넣는다.
손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과, 마왕의 목에서 새어 나오는 단말마.
마왕의 몸이 서서히 지면으로 무너져 내린다. 심장이 매섭게 고동쳤다.
이성이 아닌, 본능이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유우샤】 ……
마왕은 마지막에 이쪽을 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듯이 입을 움직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토아】 유우샤.
【유우샤】 토아, 나……
【토아】 감사합니다. 마왕은 쓰러졌습니다. 당신 덕분이에요.
【유우샤】 응. 있잖아, 토아.
【유우샤】 나,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 라고 말하려 했는데. 몸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
【유우샤】 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게 된 나는 지면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토아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 마왕을 쓰러뜨렸는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토아】 ……
【토아】 약속대로, 당신을 원래 세계에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잠깐. 아직 제대로 전하지 못했어.
【토아】 내 소원을 이뤄 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
왜 사과하는 거야, 나는.
【토아】 안녕히.
당신을 좋아해.
【토아】 ……너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어.
【크로우】 뒤처리는 이걸로 끝입니다. 그녀에게 불똥이 튈 일은 없겠죠.
【크로우】 정말 괜찮으신지? 당초 예정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토아】 그래.
【토아】 마왕── 그 인간만은 살려 둘 수 없었어. 목적은 달성했다. 그걸로 충분해.
【크로우】 사랑이라는 겁니까.
【크로우】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낚아채 버리면 좋았을 텐데.
그녀를 생각해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다니, 지금의 당신은──
【크로우】 마치 인간 같군요.
【토아】 ……보수를 받아.
【크로우】 그럼, 사양 않고.
추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본 기억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유우샤】 왜, 이런 곳에……
아무래도 귀갓길에 있는 풀밭에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마치 기나긴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주변은 이미 어둡다.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일단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어선다.
문득, 발밑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우샤】 ……
그것은 닭의 사체였다.
까마귀가 쪼아먹기라도 했는지, 닭볏은 뜯어져 있고 살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우샤】 토아.
불현듯 말이 새어 나온다. 스스로도, 어째서 그 이름을 중얼거렸는지 알 수 없었다.
【유우샤】 토아…… 토아.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다.
뭔가 후일담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거 없다!
그래도 나름 토아와 주인공에겐 해피 엔딩(?)이 아닐지
솔직히 2회차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레그가 진주인공인 줄...
실은 그냥 동네 착한 바보 닭이었다니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심지어 크로우 루트에서 나왔을 때는 이열~ 삼각관계 각인가? 했는데
등장한지 몇 초 만에 바람처럼 사라질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죠
아니 메인 일러스트만 보면 무슨 진주인공인데 인게임 취급은 지못미여
아무튼 내가 세상을 구한 날 연재는 이번 화로 끝입니다
아직 다섯 개의 엔딩이 더 남아 있으나
그걸 볼지 말지는 독자 분들의 선택에 맡깁니다
애초에 게임 홍보 차원에서 시작한 연재니까...
저는 3번이랑 8번 엔딩이 제일 좋았습니다
첫 연재이니만큼 부족한 점도 많았을 테고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분도 계셨겠지만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역/오타는 댓글로 남겨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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